《암살》은 2015년 여름, 대한민국 극장가에 강렬한 바람을 불러온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펼친 비밀 암살 작전을 중심으로 가상의 서사에 실제 역사의 무게를 입힌 이 영화는 1,27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천만 고지를 넘어선 대작이 되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했고, 류승완 감독 특유의 강렬한 연출과 시대적 메시지가 어우러져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의미 있는 상업영화’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줄거리 – 총구 앞에서 더 뜨거웠던 조국의 이름
1933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 강인국과 일본군 사령관 카와구치의 암살을 계획한다. 이 작전은 민족의 자존심과 독립의지를 담은 비밀작전이며, 실패하면 독립운동 전체의 위신이 무너지는 위험한 임무다.
이에 따라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폭파 전문가 황덕삼(조진웅), 변장과 침투 능력을 지닌 속사포(최덕문)가 암살조로 구성돼 조선(경성)으로 잠입하게 된다. 이들은 조국을 위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작전을 지시한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이정재)은 실제로는 일본군과 내통하고 있는 이중간첩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것을 우려해 암살조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일본 측에 정보를 넘긴다.
이런 상황에서 암살조의 행동은 계속 위협받게 되고, 돈만 받고 움직이는 해결사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역시 암살 대상의 경호 임무를 맡게 된다.
안옥윤은 작전 수행 도중, 자신에게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가 친일파 강인국의 양녀로 입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작전은 감정의 복잡성과 역사적 비극성을 동시에 띠게 된다.
수차례 위기를 넘긴 끝에, 암살조는 결국 작전을 실행하고 강인국과 카와구치를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염석진은 광복 후에도 친일 경력을 숨긴 채 고위직을 유지하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살아간다.
영화는 1949년, 서울. 늙은 염석진이 ‘국가 유공자’로 포장된 삶을 살고 있을 때, 노년이 된 안옥윤이 그 앞에 나타나 조용히 복수한다. 그 총성은 단순한 사적 복수가 아니라, 한 세대가 지닌 한을 정리하는 역사적 상징처럼 느껴진다.
독립운동, 그 이름의 무게
《암살》이 특별한 이유는, 실존 독립운동가가 아닌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오히려 더 넓은 공감과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 대부분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안옥윤, 황덕삼, 속사포는 수많은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상징이다.
그들은 거창한 이념보다 “조국이 빼앗겼다”는 현실 하나만으로 총을 들었고,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결국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강력한 울림을 만든다. 역사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역사 자체를 만든 수많은 무명의 인물들. 그들의 행동 하나, 총성 하나가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씨앗이 되었음을 말없이 전달한다.
또한, 《암살》은 독립운동이 단지 외세에 맞선 저항만이 아닌 우리 안의 ‘배신’과 ‘부역’에 대한 투쟁이었음을 명확히 한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가는 적보다 더 가까운 ‘친일파’의 칼에 먼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이 영화에서 염석진이라는 인물이 갖는 무게는 역사의 구조적 한계이자, 독립운동의 현실적 고통을 상징한다.
현재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영화 《암살》이 개봉한 2015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과거 청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친일 세력의 후손들이 권력과 자본을 쥐고 있었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여전히 가난과 무관심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가?”
광복 80주년을 앞둔 오늘, 그 질문은 더 절실해졌다.
- 우리는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 독립운동의 가치와 유산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가
- 역사 교과서, 영화, 드라마 등에서 그 시대를 ‘오락’이 아니라 ‘의미’로 보고 있는가
《암살》은 과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더 강하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정선을 전달한다.
또한, 영화는 ‘친일파가 처벌받지 않고 살아남는 구조’에 대해 강한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함께 선사한다.
그 점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 노년 안옥윤이 염석진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은 단순한 영화적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하지 못한 단죄와 정의를 대신 실행하는 ‘상징적 복수’로 해석될 수 있다.
결론 – 《암살》은 역사다. 동시에 우리 이야기다.
《암살》은 단순히 독립운동을 소재로 삼은 액션 영화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이며, 현재 우리가 얼마나 망각 속에서 사는지에 대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암살》은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뼈아픈 영화다. 우리의 오늘이 누군가의 피 위에 세워졌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작품. 그것이 바로 《암살》이 천만 관객을 넘은 이유이고, 지금 다시 꺼내보아야 할 이유다.